산동인
  • 티베트에 중국 문화 전파한 당나라 공주 – 문성공주

    티베트에 중국 문화를 전파한 당나라 문성공주는  산동 제녕시에서 태어났습니다. 황궁이 있던 당나라 수도는 장안(현재 서안)이었지만 당태종 이세민은 종가 자손인 문성공주를 토번국 송간 찬포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산동에서 3600km 떨어진 이역만리 토번으로 시집을 갔지만 문성공주는 토번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문성공주를 ‘갑목살’이라고 불렀는데, 티베트어로 갑은 중국을, 목은 여자를, 살은 신선을 뜻합니다. ‘중국에서 온 여신’으로 추앙을 받았던 것입니다.

    문성공주는 시집을 갈때 중국에서 다양한 문물을  가져가 토번 문화 발전에 기여합니다.  또 중국 불교문화 유입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문성공주 스스로도 문화사업을 벌여 양국 문화교류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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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한 글솜씨의 문인- 좌사

    좌사는 제나라 임치 출신으로 서진 시기에 활동했던 문인입니다. 그는 외모가 추하고 말도 더듬거렸지만 문필만큼은 아주 화려했습니다. 어렸을 때 글 공부가 시원치 않아 아버지에게 무시를 당하자 좌사는 글짓기에만 매달려 이토록 훌륭한 문학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좌사 작품은 부(賦)가 주를 이룹니다. 부는 한문 문체 중 하나로 생각이나 눈앞의 경치 같은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방법입니다. 초기 작품 ‘제도부’는 좌사 고향인 임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후 그는 다양한 역사, 지리, 풍습 등 자료를 수집해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삼도부(三都赋)’라는 작품을 완성합니다. 삼국시대 위, 촉, 오를 주제로 한 삼도부 구성은 절묘하고 웅장하며 세 나라 도읍의 아름다움을 화려하게 표현했습니다. 삼도부는 좌사 작품 중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삼도부로 인해 고사성어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삼도부가 널리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앞다투어 베껴 쓰기 시작했는데, 한 때 낙양성 종이가 부족해져 종이 가격이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중국어에서 훌륭한 작품을 묘사하는 ‘낙양지귀(洛阳纸贵)’라는 성어는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입니다.

    좌사는 부 외에도 숱한 명작을 남겼습니다. 대표작으로 ‘영사(咏史) 8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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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조 셋째 아들 동아왕– 조식

    동아아교와 대운하 주요 거점인 동창호가 있는 산동 요성시에는 조식공원과 조식묘가 있습니다. 조식은 위무제 조조의 셋 째 아들로, 동아왕에 봉해져 요성에 살았습니다.

    조식이 태어난 곳도 오늘날 요성시 신현 일대에 해당하는 동무양입니다. 동무양은 조조가 복양에서 흑산적 백요군을 격파한 공으로 얻은 첫 기반이 됐습니다. 조조는 뒤이어 청주에서 황건적 잔당 반란을 토벌하고, 이들 가운데 투항자를 받아들여 자신의 전력으로 삼았습니다.

    나관중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가 악역을 맡으면서 저평가 된 경향이 없지 않으나, 실제 역사에서 조조는 건안문학으로 대표되는 문화 발달을 이끈 제왕입니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남겨 아들 조비, 조식과 함께 ‘조씨 삼부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조식은 이 조씨 삼부자 가운데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졌으며, 중국 2000년사에서도 이백, 소식과 함께 3대 선인으로 꼽힐 만큼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입니다. 선인은 사람이 아니라 신선의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남북조 시대 사령운은 “천하에 재능이 한 섬이 있다면 조식이 홀로 여덟 말을 차지하고, 내가 한 말, 세상 사람들이 나머지 한 말을 나누어 가진다((天下才有一石, 曹子建獨占八斗, 我得一斗, 今天下共分一斗)고 칭송했습니다. 여기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이를 ‘재점팔두’라고 일컫는 고사성어도 유래됐습니다.

    조식 작품으로는 낙신부, 백마편, 칠애시, 칠보시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낙신부는 형 위 문제의 황후 견비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문학작품으로 승화해 더욱 유명합니다. 또 칠보시는 콩대로 불을 때 콩을 삶는 상황을 위 문제에게 핍박 받는 자신의 처지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조식은 이와 같이 황위 계승 다툼에서 밀려 불운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봉지 역시 세력을 키울까봐 견제를 받는 통에 평원후, 임치후, 옹구왕, 동아왕, 진왕으로 계속 바뀌었습니다 실제 묘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이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석비를 비롯해 132건의 수장품이 출토된 동아현 어산 서쪽 기슭 무덤이 가장 유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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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도교 ‘전진교’ 제5대 장교 – 구처기

    중국 무협 드라마로 더욱 친숙한 김용 소설 ‘사조영웅전’에는 전진칠자 구처기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금나라와 결탁한 간신 왕도건을 살해해 내장을 씹어 먹는가 하면, 송나라 황제가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정강의 변’ 잊지 말라며 곽정과 양강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또 곽정과 양강이 18년 후에 무공 대결을 펼치게 하자는 약속을 하는 등 전체 극 전개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어 소설 ‘신조협려’에서는 양강 아들 양과를 전진파 문하로 받아들였지만 제자들이 왕따를 시켜, 결과적으로 양과와 고묘파 소용녀를 만나게 하는 ‘신의 한수’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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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교 제5대 장교인 구처기는 실존 인물입니다. 김용 소설에서 묘사된 ‘성격이 불 같고 내기를 좋아하는’ 캐릭터와는 별개로, 실제 역사에서 구처기는 한 마디 말로 몽골제국 칭기즈칸의 살육을 멈추게 한 ‘일언지살(一言止殺)’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구처기는 산동성 연대시 서하현 출신입니다. 19살 때 출가하며 곤유산에서 수행했고, 20세때 전진교 시조인 왕중양의 제자가 됐고 뛰어난 자질로 전진칠자에 합류합니다. 왕중양이 별세한 후 섬서성 반계에서 7년, 용문산에서 6년간 수행을 하며 내공을 쌓았습니다.

    50대가 되어 다시 고향인 서하로 돌아와 태허궁을 세우고, 청도 노산을 오가며 수도에 정진합니다. 노산 앙구 백용동에 남아있는 석각 20수를 비롯해 태청궁과 상청궁 등에는 구처기가 남긴 수많은 시와 사가 많습니다.

    55세 때 비로소 전진교 제 5대 장교가 됩니다. 1222년 70대가 되어 칭기즈칸에게 초빙돼, 그를 만나기 위해 삼만오천리 떨어진 서역행을 감행합니다.

    칭기즈칸은 진시황과 한무제와 마찬가지로 구처기에 ‘불로장생’의 비법을 묻습니다. 이에 대해 구처기는 “양생법은 있지만 불로장생약은 없다”고 통쾌하게 답변합니다. 그리고 양생법으로 ‘경천애민’과 무고한 양민을 도살하는 것을 중지하라고 건의합니다.

    칭키즈칸은 구처기를 인정하고, 중국 도교를 총괄 대종사로 임명합니다. 그 후 연경으로 돌아와 노예 3만명을 양인으로 해방시켜주는 등 활동을 하며, 남송 시기부터 원나라 초기까지 오랜 전란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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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녀유혼’, ‘화피’ 작가-포송령
    중국 판타지 영화 ‘천녀유혼’, ‘화피’ 등은 소설집 ‘요재지이’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여우, 요괴, 신선, 도술, 이상한 이야기 등이 결합된 지괴소설 대표작입니다. 소설집 제목인 요재지이는 작가 포송령 서재 이름 ‘요재’에서 괴이하고 기이한 것을 기록했다는 뜻으로 붙였습니다.

    포송령은 명말 청초에 활동한 문인입니다. 고향은 산동 치박 치천현에서 동쪽으로 7리 떨어진 만정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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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송령은 본래 과거로 입신양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유생입니다. 하지만 19세 때 생원 시험은 수석으로 합격했으나, 상급 시험인 향시 거인 시험에서 수차례 낙방했습니다.

    결국 관리가 되지 못하고 고향 유력자인 필제유 후원으로 약 40년 동안 훈장 노릇을 했습니다. 생활고는 해소할 수 있었으나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 품고, 요재지이를 써나갔습니다.

    작품 속 요괴는 대부분 인간보다 더 인간적입니다. 또 악인과 탐관오리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뒤인 1950년에 작자 자필 원고 237편이 요녕성에서 발견됐습니다. 이 원고를 바탕으로 필사본으로만 전하던 작품 오류를 수정한 판본이 1962년에 회교본이라는 이름으로 중화서국에서 발간됐습니다. 회교본은 전 12권이며, 491편이 수록돼 있습니다.

    포송령이 실제로 살았던 집 ‘포송령 고거’는 치박시 치천에 있습니다. 이 곳은 포씨 집성촌이기도 합니다. 또 요재지이를 테마로 한 테마파크 ‘요재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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